
언어의 학습 곡선
“제가 왕초보인데, 얼마나 해야 영어가 늘까요?” 혹은 “어떤 플랜을 들어야 할까요?”
이런 질문들을 종종 받고는 합니다. 오늘은 ‘도대체 몇 시간을 배워야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나?’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언어의 학습 곡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해 언어의 학습 곡선을 그려봤습니다. 먼저, 아무리 불같은 의욕으로 시작하더라도 처음에는 모두들 좌절합니다 (초록색 구간).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휘는 모자라고, 대화할 때 알아듣는 내용이 제한적이어서 의욕이 꺾여버리죠.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이 단계에서 좌절하고, 실전 연습은 회피하며 인강에만 의존하는 악순환에 빠져버리는 것 같습니다.
반면 두려움만 넘어선다면 처음 100시간동안 실력 향상이 대단합니다 (노란색 구간). 레슨3에서 이야기했듯, 1000개의 단어만 알고 있으면 영어의 89%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될 즈음부터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90%를 이해하기까지는 3000개의 단어가 필요하다고 하죠. 3배나 더 어휘력이 늘었지만, 실력은 1%밖에 늘지 않았네요. 하지만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려면 20,000개의 활용어휘와 40,000개의 이해어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중급에서 고급으로 가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데 반해 눈에 띄는 차이는 그닥 없기 때문에 의욕이 확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황색 구간에서 주저앉아버리게 됩니다.
한편 유학을 가거나 어학 연수를 가는 등, 영어 생활권에 들어서게 되면 중상급인 빨간색 구간에 진입하게 됩니다. 학교나 일 때문에 영어를 접하게 양이 늘었지만, 따로 신문 혹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면 영어를 할 수 있지만 완벽하게 구사는 못 하는 ‘OK plateau’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평균 한국인에 비해 유창하긴 하지만 여전히 영어가 불편한 수준에서 만족(OK)하고 마는 현상이죠. 그래서 많은 유학생 혹은 이민 1.5세들은 ‘난 0개 국어를 해’ 혹은 ‘영어와 한국어를 합쳐서 1개 국어를 하는 것 같아’라고 느낍니다. (혹시 그렇게 느끼고 계신다면 혼자가 아닙니다 ㅠㅠ)
초급에서 중급으로…
제가 영어를 막 배우기 시작했던 시기는 워낙 어렸을 때라 경험만으로는 정확히 몇 시간 걸린다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Benny Lewis에 따르면 언어 실력을 의사 소통이 가능한 정도로 끌어올리는 데까지 약 400-600시간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경험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한 가지는, 예전에 어느 초보 학생과 매일 10-30분 정도 대화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역시 아티클 수업 방식이었죠), 약 3달 정도 됐을 즈음 시험을 쳐야한다고 하더라구요. 따로 학원을 다니거나 공부를 하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시험 성적이 2단계나 올랐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 학생이 체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튜터로서는 실력이 꽤 향상된 것이 느껴졌는데요. 일단 제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듣던 초기와 비교해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는 리스닝이 확연히 좋아졌구요. 수업 내용을 예습해 오는 날이면 단어 연결이나 문장 표현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어렵지 않아요: 1) 좌절하지 말고, 2) 50시간만 꾸준히 연습 (인강 듣는 건 포함되지 않아요)하면 확실히 실력이 늘 거에요.
중급에서 고급으로…
지난 레슨에서 문법 총정리가 도움이 됐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대학교 졸업 당시 저는 빨간색 범위에 속하는 유학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물론 외국인으로서 영어하는 것 치고는 잘 하는 편이었으나, 제가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하거나 영어가 편하지 않았으니까요. 근데 GRE 준비를 하면서 학원에 가는 대신 독학을 했습니다.
약 3개월 동안 하루에 8시간 이상씩 영어공부만 했죠. 그 중 60%는 뉴욕타임즈를 읽는 데 할애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모르는 단어와 숙어, 그리고 지역 이름이나 사람 이름도 다 찾아가면서 ‘사설 (Opinions & Views)’ 페이지 2장을 정독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0%는 GRE writing의 에세이 주제로 글을 적었는데, 최대한 새로 익힌 단어들을 활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티클 수업과 연관성이 보이나요?)
첫 2개월은 ‘이게 무슨 삽질이지…’라는 생각에 답답했죠. 딱히 점수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력이 느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게 암흑속에서 헤맨지 500시간이 넘어가던 시점, 확실히 글이 더 매끄러워졌고 새로 배운 단어들도 익숙한 듯 쓰고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이 3개월 정도의 기간동안 영어로 읽고 쓰는 시간만 해도 700시간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좌절하지 않는 것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결과가 바로 보이지 않으면 쉽게 좌절합니다. 하지만 전혀 실력이 늘지 않다고 느껴지는 때가 다음 레벨로 도약할지 아니면 그 상태에서 머물지, 심지어 퇴보할지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Lesson #7 Takeaways
- 처음에 답답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 좌절하지 말고 50시간만 투자해보자
- 중급에서 고급으로 넘어갈 땐 노력과 실력이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 (OK plateau)
- 그 시기가 도약할지 퇴보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