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허핑턴포스트에 올라온 “스스로 ‘B급’이 된 대기업 직원의 사연” 기사에 마음이 참 씁쓸합니다. 지인의 댓글에 “근데 웃기는 건, 나름 ‘A급 인재’에서 ‘B급 직원’으로 사는 것에 환멸을 느끼면서 결국 회사를 때려치잖아… 그러고 나면 ‘C급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머지 않아 발견하게 됨…” 그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사는 국민이 한국 사람인데 왜 A급 인재는 A급 인생을 못 사는 것일까요…

대기업 이외의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는가?
한국 대기업 생활은 대학교때 인턴으로 한 달 다닌게 전부인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만은 이 악순환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는 한국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아직도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하시고 대기업에 취직을 하셨던 아버지는 깡촌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서 자수성가를 하신 타입. 회사에서 유학을 보내줘서 미국에서 잠시 살았었는데, 당시 3살이었던 제가 그 당시 아버지가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하셨는지 정확한 기억은 안 나나 일요일 하루는 절대 집에서 한국말 쓰지 않을 정도로 영어에 신경을 많이 쓰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몇 년 후, IMF가 터지고 말죠. 그 당시 아버지의 결정은 PlusPetrol이라는 아르헨티나 회사의 페루 지사에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테지만 훨씬 더 좋은 조건에, 저희 두 자매에게는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기회였음이 분명했습니다.
아버지는 미국 석사 학위가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었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서양권의 사고방식을 조금 더 잘 이해하는 지금 전 학위가 아니라 아버지의 능력과 그를 소통할 수 있는 영어 실력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소통할 수 없다면 그들에게 아버지의 학위는 무가치할테니 말이죠. 아버지는 한국 대기업의 대안을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찾으셨고, 그 덕분에 남들이 겪어보지 못하는 많은 문화를 보고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안락함을 포기함을 의미하고, 그 당시의 결정이 최선이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어’라는 능력이 한국이라는 울타리 넘어서의 세상으로 통하는 창구가 되어주었고, 저희 가족에게 다른 선택의 옵션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언어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리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더 넓은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입니다. 이 통로는 어둡고 길지만 지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Live the first-class life that you deserve to live.